전통적 우호국인 한-일 두 나라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래 1년 넘게 정상끼리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두 나라 관계가 이토록 오랫동안 냉각된 적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원인이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수정주의 행위에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속에서 최근 두 나라의 꼬여 있는 관계를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뒤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군사적 발언권을 높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동맹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하기를 원한다. 진작부터 우리나라와 일본 양쪽에 여러 경로를 통해 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외무성의 사이키 아키타카 사무차관이 어제 방한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쪽 상대인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의 취임에 맞춰 인사차 오는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지만, 시점으로 볼 때 그 이상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방문 이후 양국의 첫 고위급 접촉인데다 이달 말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와 다음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 언론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 또는 한-미-일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최윤희 합참의장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 등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봐가며 발전적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도 주목된다. 미국이 한-일 안보협력을 압박하는 시점에 미국에 가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을 원론적 언급이라고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두 나라가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는 당위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게 바로 아베 정부의 역사 퇴행적 행위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에 일본 정부의 직간접적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만 해도 그렇다. 일본 정부는 담화를 수정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재검증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진정성 없는 태도론 절대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없다. 미국 정부도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니 일본이 참으라는 소극적 주문에서 벗어나, 아베의 역사수정주의가 전쟁 책임과 전후 질서를 부정하는 망동이라는 걸 분명하게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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