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곧 끝나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후임에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14일 내정했다. 이 위원장이 친박계의 중진 정치인인데다 정권교체 뒤 퇴임한 이계철 전임 위원장이 남긴 1년여의 임기를 채우는 식으로 임명됐으니 예상 밖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원장도 발표 직전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문책성 경질 인사의 성격이 짙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의 균형발전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다는 방통위의 설립 목적에 견줘 볼 때, 이 위원장의 방통위가 특별하게 한 일이 없는 건 사실이다. 특히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뉴스 9’가 통합진보당 보도를 편파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당하고,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5·18 북한군 침투’ 등의 날조·저질 방송이 기승을 부리는 등 가장 중요한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후임에 내정된 최 부장판사가 방통위를 이끌어갈 적임자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청와대는 한국정보법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관련 전문성과 경험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성품이 곧다는 점을 인선 배경으로 설명했으나,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방송이나 통신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최 내정자의 솔직한 말이 신선하게 들린다.
결국 방송·통신 분야의 문외한인 법률 전문가를 방통위원장에 내정했다는 얘기인데, 방송의 본질인 공정성에 대한 방통위의 관심은 더욱 옅어질 게 뻔하다. 방통위가 언론의 특정 분야로서 방송·통신을 다루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일종의 언론 및 언론계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방통위 업무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빼면 기술이나 경쟁력 등 산업적 측면의 일만 남게 되는데, 이는 마음 수련은 신경 쓰지 않고 몸매 관리만 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황찬현 감사원장에 이어 방통위원장까지 법조인 출신이 줄줄이 요직에 등용되는 인사 편중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방통위 산하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도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씨가 맡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방송·통신 분야의 전문성도 없고, 사회적으로 위화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번 인사를 재고하기 바란다. 방통위원장 자리는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인사를 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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