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 대해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양새만 보면 수사가 본궤도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검찰이 공식 수사로 전환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팀의 인적사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일 국정원 압수수색 때도 수사에 필요한 압수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철저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남 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국가 2급 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인물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자초했지만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지난 1년 동안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도 남 원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검찰 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하는가 하면, 소환된 직원들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기 일쑤였다. 심리전단 직원들 명단과 아이디, 게시글 활동 내역 등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지난해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일부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수사 비협조는 개인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남재준 원장의 지시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입회해 계속 국정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의 댓글 사건에 대해서도 이토록 철저히 방어막을 치는데, 자기 때 사건인 증거조작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중국대사관이 법정에 제출된 문서가 위조라고 밝힌 지난 한 달 동안 국정원이 내놓은 사과와 해명이 모두 발뺌과 꼬리자르기뿐이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사태 해결에 대한 실질적 조처는 하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직속 기관이며,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남재준 원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국정원 직원들은 계속해서 수사를 방해할 것이며, 검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진실규명을 원한다면 남 원장을 해임해야 한다. 그게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첫 번째 선결요건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남 원장 경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또다른 수사 방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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