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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의료 영리화 묵인한 의정 타협안의 한계

등록 2014-03-17 18:41

집단휴진을 앞두고 대한의사협회와 정부가 어렵사리 타협점을 찾아냈다. 의협 회원들이 협상 결과를 수용할지 결정하는 투표 절차가 남아 있지만 집단휴진 사태로 인한 시민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또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 전공의들의 주당 근무시간은 최대 88시간까지로, 48시간인 유럽이나 80시간인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열악하다.

하지만 애초 의사들이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의료 영리화’ 문제는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원격진료의 경우 6개월간 시범사업을 벌여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진짜로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생각이라면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추진을 6개월 만이라도 보류해야 옳다. 그러나 의협은 정부가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문제도 정부 방침대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자회사로 진료수익이 빠져나가는 문제점만 개선해 의료 영리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담겨 있다. 부대사업 확대, 인수합병 허용, 법인약국 허용과 같은 의료 영리화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정부가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몇몇 단체들과 논의기구를 만들어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하지만,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 추진에 들러리를 서는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의협이 이처럼 쉽사리 ‘의료 영리화’를 묵인해준 이유는, 이날 합의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성에 그 비밀이 숨어 있는 듯하다. 의협과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연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럴 경우 보험 수가 인상 등에서 의사들의 입김이 훨씬 세지게 된다. 의협이 그동안 의료 영리화 반대를 명분으로 내걸고 싸워온 게 결국 보험 수가 인상으로 귀결되는 듯해 씁쓸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의료 영리화 저지라는 과제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정 협의 틀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의료공급자 단체만 포함했을 뿐 시민을 대표하는 단체나 의료소비자 단체는 빠져 있다. 의료 영리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의사도 약사도 아닌 일반 시민이다. 원격진료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시민이고, 영리 자회사로 인해 인상되는 의료비를 떠안아야 하는 것도 시민이다. 확대되는 의정 협의 틀에는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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