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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한 경기 두 규칙’ 이대로 좋은가

등록 2014-03-21 19:00수정 2014-03-21 22:48

기초선거 공천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여야가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해 경기를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신나게 달려가는데 야당은 다리에 쇳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격”이라는 등의 각종 비유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공약을 어긴 정당은 이익을 얻고 공약을 지키려는 정당은 피해를 보는 ‘비정상적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술 더 떠서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기초공천 폐지 철회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국민 약속을 뒤집으려는 검은 속내” 등의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적반하장 정도의 표현으로는 부족한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변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이 과연 이런 비난을 할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대국민 약속이고 신당 추진의 연결고리인 만큼 이제 와서 번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안철수 의원도 “서로 어려움을 나눠 짊어지고 가기로 약속한 사안”이라고 ‘무공천 철회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사자들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걸 ‘새정치’나 ‘약속 준수’라는 말로 넘어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우선, 분명한 사실은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꼭 새정치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에 대해서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부정부패 등 각종 폐해가 지적된다. 반면에 정당공천 폐지가 책임정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반론도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공약을 파기한 터여서 정치개혁의 의미는 더욱 상실됐다. ‘새누리당을 위한 정치’라는 뜻의 ‘새정치’라면 몰라도 이런 선거는 새정치도 아니고 헌정치도 아니고, 단지 ‘엉망 정치’일 뿐이다.

기초공천을 하지 않으면 비례대표 제도까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초선거 공천을 하지 않으면서 비례대표 공천만 하는 건 모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목소리 대변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이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신뢰의 정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우직하게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신당 쪽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약속 위반’을 한 새누리당에 역풍이 불어 오히려 야당 쪽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순수’와 ‘어리석음’은 다른 문제다. 둘째, 사실상의 ‘내천’이나 후보자 간접지원 등의 꼼수를 썼다가는 그나마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마저 잃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총선·대선 등을 보면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라는 주장도 꼼꼼히 검증해봐야 한다. 기초선거 완패가 가져올 후폭풍을 감내할 만큼 신당의 체력이 튼튼한지도 의문이다. 기초선거 공천이라는 난제 중의 난제는 신당의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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