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4일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시작했다. 22일은 토요일, 23일은 일요일이라 노역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5억원씩 10억원의 벌금을 탕감받았다. 허 회장이 맡을 일은 쇼핑백 만들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가 쇼핑백을 하루에 100개 만든다면 쇼핑백 하나가 500만원짜리인 셈이다.
형법 제69조 2항에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 ‘3년 이하’의 범위 안에서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돼 있다. 일반서민의 경우 90% 이상의 노역 일당이 5만원으로 계산된다. 허 전 회장의 노역 가치는 일반인보다 1만 배나 크다. 또 이런 계산법은 법원의 실무 관행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판사들은 대개 법에서 규정한 3년(1095일) 대신 1000일로 끊어서 계산을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 하루치 노역이 1억1000만원인 것은 그의 벌금 1100억원을 1000일로 나눈 것이다. ‘선박왕’ 권혁 회장도 벌금이 2340억원이었는데 이걸 대략 1000일로 나누니 하루 3억원꼴이 됐다. 유독 허재호 회장의 경우만 노역장 유치 기간을 49일로 잡아 하루 일당을 5억원으로 계산했다. 상식적이라면 벌금액 254억원을 1000일로 나눠 하루 2540만원씩 하거나, 계산하기 편하게 하루 3000만원씩으로 하는 게 고작이다. 더구나 1심에선 하루치 노역을 2억5000만원으로 했는데 항소심에서 두 배나 올렸다. 법원에서 통용되는 셈법을 한참 벗어난 것이니, 누가 봐도 봐주기 판결의 냄새가 짙다. 1·2심 재판장은 모두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해온 향판이고 허 회장은 지역 유지다. 향판과 지역 기업인의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법원만이 아니다. 검찰도 일당 5억원 노역 판결에 힘을 보탰다. 검찰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징역 5년과 벌금 1016억원을 구형했다. 그런데 벌금형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게다가 검찰은 항소, 상고마저 포기했다. 이 덕에 허 전 회장은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밑져야 본전’인 상황에서 항소·상고심을 받을 수 있었고, ‘일당 5억원’ 최종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징역 5년 실형을 구형하고도 1·2심 집행유예 판결에 모두 승복했으니, 참으로 고분고분한 검찰이다.
법원과 검찰이 더는 이런 ‘봐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이번 기회에 벌금형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현행법은 노역 일당을 법관이 재량껏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노역장 유치 기간이나 노역 일당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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