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1일 자살 시도자 면접조사와 심리적 부검, 국민 인식 조사를 토대로 대규모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 자리를 9년째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 중요하게 쓰일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자살이라는 현상은 심리학의 대상이나 사회학의 대상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자살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잔혹한 논리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통계 수치 속에서 개인이 처한 구체적 삶과 고통을 간과하기 쉽다. 둘 다 경계해야 할 태도다.
그런데 복지부가 내놓은 자살예방 대책은 지나치게 의학적인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이 보인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겠다는 대책은 눈에 띄지 않고 전국민 정신건강검진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혔다. 정신과 치료를 통해 약물을 복용하고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문제는 감춰지고 자살을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는 더욱 깊어질 뿐이다. 결국 자살은 마음 약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근본적인 문제를 방치한 국가의 책임은 사라진다.
우선은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구조를 고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경쟁에 내몰려 소외되거나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내고, 자살 위험군에 속하는 노인과 빈곤층에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확충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있었다. 1960~1970년대 개발독재 시기다. 1965년 인구 10만명당 29.8명이 자살했고, 1975년 자살률은 31.9명이었다. 박정희식 압축 근대화가 기존의 가족·친족·지역 공동체를 와해시켰고 사회안전망 없는 개발이 인간을 절망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런 비인간적인 사회구조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도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그래도 당장 응급조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긴급구조망을 연결해줘야 한다. 전북 진안군이 좋은 사례다. 진안군은 2011년 10만명당 자살자가 75.5명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깜짝 놀란 전북도가 전수조사를 통해 자살 위험이 큰 노인 63명을 파악한 뒤 전문가들로 하여금 한 달에 한 번씩 노인들을 찾아가 상담하도록 했다. 2012년 사망률은 21.8명으로 뚝 떨어졌다. 1년 만의 변화다. 누군가가 자기들을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인들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