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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나마스테’ 내치며 ‘품격 있는 나라’ 될 수 있나

등록 2014-04-03 19:02수정 2014-04-03 20:34

16년 넘게 한국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외국인이 귀화를 거부당한데다 강제추방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의 주인공 ‘카밀’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네팔 출신 티베트 난민 라마 다와 파상(한국이름 민수)씨가 바로 그런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다. 민수씨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국인 아내의 남편이고, 몸이 불편한 장모를 모시고 사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민수씨가 이런 처지에 몰린 것은 법무부가 국적법 조항을 편협하게 적용한 탓이다.

국적법 5조의 귀화요건을 보면, ‘품행이 단정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있다. 민수씨의 경우 500만원 벌금형을 받아 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조항은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규정이 모호하다’고 지적을 받은 문제 조항이다. 인권위는 “품행 단정을 요구하는 국적법 귀화요건 조항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심사할 것인지 하위 법령에도 명시된 바 없다”며 내용을 구체화하라고 권고했다. 이런데도 이번 민수씨의 경우에 전체 맥락을 살피지 않고 기계적으로 이 조항을 적용한 셈이다. 게다가 법무부 내부지침상 2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외국인은 강제퇴거 대상자로 분류돼 강제추방 여부를 심사받게 된다니 설상가상이다.

민수씨는 ‘품행 단정’ 요건에 걸려 귀화를 거부당했지만, 실상은 모범적인 한국인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다. 1998년 입국한 민수씨는 2006년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2008년 티베트 독립운동이 벌어지자 여기에 적극 참여했고, ‘민주화의 성지’인 서울 명동성당 앞에 티베트 식당을 차렸다. 그런데 이 식당이 들어선 건물이 강제철거 대상이 된 것이다. 2011년 민수씨와 임신중인 부인은 철거반대운동을 하다 크레인을 막고 버틴 것이 업무방해 혐의에 걸렸다. 민수씨는 이웃 임차인들의 집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벌금형 판결의 이유가 됐다고 한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돕는 것이 불이익으로 돌아온 셈이다. 성실한 가장이자 민주시민으로 살아온 사람이 귀화를 거부당하고 강제추방 걱정까지 해야 한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품격 있는 일원이 되기에 아직 멀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민수씨가 모델이 된 소설의 제목 ‘나마스테’는 안녕과 평화를 비는 네팔의 인사말이다. 이번 기회에 국적법 조항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해 민수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에 ‘나마스테’가 깃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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