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대선 때 신세 진 인물을 공공기관 임원에 앉히려고 공모 시기를 조절하는 편법까지 동원한 정황이 포착됐다. 역대 어느 정부도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해도 정도껏 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에도 염치가 있어야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정부가 입으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비정상의 심화’에 앞장서고 있으니 보기에 민망할 노릇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이창섭 충남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박근혜 후보 대선 지원 조직인 대전희망포럼 대표였다. 박 대통령을 ‘희망 그 자체’, ‘등대 같은 지도자’로 칭송했던 인물이다. 선거 때 진 신세 갚기 인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교수를 위해 공모 시기를 5개월 남짓 미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공단은 전임 이사장의 임기가 지난해 10월15일 끝났는데도 지난달에야 뒤늦게 공모 절차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선거법을 위반해 올해 2월까지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자격정지 상태였다. 이사장직을 반년 가깝게 빈자리로 남겨두면서까지 공모 시기를 늦췄으니 이 교수에게 응모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얘기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변추석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한 것도 무자격 낙하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변 교수는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서 홍보·미디어본부장을 했다. 관광공사 자문위원 경력이 있다고 하지만 전문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낙하산 투하’에 적극적이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다는 점에서 그 뻔뻔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에게 낙하산 근절을 보고하는 당일에 보란듯이 낙하산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낙하산 인사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부채 누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공기관 임원 임명이 대통령 권한이란 점에서 청와대가 공공기관 개혁의 걸림돌 구실을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더해 청와대가 공직사회 기강 해이를 부추기는 듯한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하다 금품수수·향응접대 사실이 적발된 행정관 5명이 소속 부처로 돌아간 뒤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관계자한테서 돈을 받고, 부처 법인카드를 받아 쓴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감싸기에 급급했다. 청와대가 4일 징계 절차를 진행하도록 해당 부처에 통보했지만 언론의 질타가 거듭되자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여서 뒷맛이 씁쓸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