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등급 심사에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으니 한국이 인권 후진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꼴이 됐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수준은 국격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나라의 수치가 돼버린 인권위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국격을 거론할 자격도 없다.
이번 조처는 국제사회가 한국의 인권위와 인권 상황에 대해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공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등급 심사를 보류했지만 추후 재심사에서 등급이 강등되면 한국은 투표권과 발언권을 제한당한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다. 2001년 독립적 국가기구로 출범하며 인권 수준을 과시했던 인권위가 어쩌다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인권위는 이번 판정이 한국의 인권 상황이나 인권위의 활동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인권위의 국제적 위상 추락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참사였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한국 인권위의 등급을 하향조정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고, 국제앰네스티 본부는 인권위의 독립성과 불편부당성에 의문을 나타내왔다. 유엔 인권기구들도 인권위의 독립성 훼손을 거듭 경고했다. 인권위에 대한 등급 보류는 이런 일들이 쌓인 결과다. 그런데도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을 초래한 인권위가 본질을 호도하며 핑계 대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참으로 뻔뻔하다.
인권위가 이 지경이 된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였다. 독립적 국가기구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격하시켰고, 조직을 축소해 기능을 약화시켰다. 인권수호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내쫓고 인권과 무관한 측근 인사들을 앉혔다. 인권위를 ‘정권의 하수인 집단’쯤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인권위의 위상을 추락시킨 일차적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인권위를 ‘식물기구’로 전락시키며 온갖 퇴행을 저지른 현병철 위원장 체제를 존속시키고 있는 것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제 인권위는 인권 의제에 눈감고 인권 침해에 침묵하는 ‘인권 방조위원회’가 돼버렸다.
국제조정위원회는 6월30일까지 지적 사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병철 위원장 체제를 그대로 두고선 등급 강등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려면 우선 국가인권위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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