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각 부처가 규제완화 작업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더니, 공정거래위원회가 앞장서서 사회적 경제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까지 폐지하려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암덩어리’ 규제를 제거하자며 마구잡이 식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규제완화 몰이가 사회적 경제와 경제적 약자 보호 기반까지 무너뜨릴까 걱정스럽다.
공정위는 지난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경쟁을 제한하는 자치법규 개선과제를 올해 상반기 안에 완료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어 3월24일부터 권역별로 업무설명회를 열어 광역단체 8곳에서 설명회를 완료했고 이번주와 다음주에 나머지 7곳의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공정위는 지자체와 협의를 거치는 형식을 밟아 폐지·완화할 자치법규를 확정해 연말까지 작업을 끝낼 방침이다.
공정위가 폐지·완화하라고 압박하는 자치법규에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 분야와 중소기업·소상인·여성·장애인과 같은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경제민주화 조처가 다수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시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전남의 ‘협동조합 생산품 우선 구매’, 경기도의 ‘여성기업 지원’, 대구시의 ‘대형마트 신규 입점 제한’ 등이 철폐 대상에 올랐다. 경제민주화를 대선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던 박 대통령이 취임 뒤 방향을 ‘줄·푸·세’ 쪽으로 돌리더니, 이제는 경제민주화의 흔적조차 지워버릴 태세다.
공정위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육성 조례를 ‘경쟁 제한 자치법규’로 규정해 없애려 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를 키우자는 최근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새누리당은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쪽은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범사회적으로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판에 정부가 큰 흐름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규제 폐지 방침이 현실화할 경우 겨우 싹을 틔우고 있는 사회적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지자체의 지원이 경쟁을 막는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를 다 악으로 보는 공정위의 이런 사고야말로 철폐해야 할 경쟁지상주의 사고다. 공정위 주장대로 하자면 결국 경쟁에 방해가 되는 모든 지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경쟁보다 소중한 것이 보편적인 삶의 질이라는 것은 상식이 되고 있다. 공정위는 사회적 경제를 망치고 경제적 약자를 죽이는 개악 조처를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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