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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교육 구멍’ 숭숭 뚫린 선행학습금지 시행령

등록 2014-04-10 19:02

교육부가 9일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의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사교육비의 주범인 선행학습을 막자는 것이니, 그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도 제법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내면 학교에 지원하는 예산을 줄이고, 대입 논술·면접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선 내용을 출제하는 대학은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내용 등이다. 하지만 이 법령이 질병의 원인은 놔두고 증세만 치료하는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고3이다. 이과 수학 과목의 경우 대다수의 일반고는 오래전부터 2학년까지 고교 3년 과정을 모두 가르치고, 3학년 때는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을 해왔다. 그런데 선행학습금지법이 적용되면 3학년 1학기에 그 어렵다는 ‘적분과 통계’와 ‘기하와 벡터’ 두 과목을 동시에 배워야 한다. 그러니 고3 학생들 사이에서는 “재수해서 고4년을 다니든가, 아니면 학원 가서 미리 배우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 과목의 수능 시험 범위를 모두 반으로 줄이거나, 두 과목 중 한 과목만 선택하게 하는 등으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

또다른 문제는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자사고와 특목고(외고·과학고)는 얼마든지 선행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고에는 족쇄를 채우고 귀족학교에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니, 안 그래도 심각한 입시 경쟁에서의 불공정 격차가 더 확대될 뿐이다. 국가가 정해주는 필수 이수단위를 자사고·특목고도 일반고와 동일하게 맞춘 뒤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 것이다.

결정적인 건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못 하도록 하지만 학원에서는 허용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학원들은 이런 ‘선행학습 독점권’을 내세워 더 기승을 부릴 우려마저 있다. 학원도 선행학습을 규제하지 않는 한 ‘풍선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을 도입한 취지는 사교육의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다. 연 20조원을 넘는 과다한 사교육비는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효과가 불확실한 선행학습 금지에 매달리기보다는 대학별 논술고사부터 폐지하는 게 합리적이다. 교육분야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학부모와 학생·교사 10명 가운데 8~9명 정도가 논술을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해 우선적으로 폐지해야 할 과목이라고 지목했다. 정부가 나서서 논술부터 없앤다면 사교육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알리게 돼, 이후 다른 대책들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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