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이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억지 핑계를 대며 기념곡 지정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도 빼앗고 민주화운동의 역사까지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의 생생한 역사 그 자체다.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광주 들불야학을 이끌다 1979년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전남대생 김종률이 백기완의 시에서 가사를 따와 만든 노래다.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금세 퍼졌다. 민주화운동의 현장마다 이 노래가 불렸다. 민주화를 위해 흘린 피와 땀이 노래 속에 짙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에서도 이 노래는 빠지지 않았다. 국가기념일이 된 1997년부터는 정부 주관 행사에서 공식 제창됐고, 역대 대통령들도 함께 불렀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민주화는 이 노래와 함께 전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노래를 부정하겠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망동이다.
지금 정부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8일 국회에서 기념곡 지정 문제에 대해 “워낙 강한 반대 여론이 있기 때문에 자칫 국론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답변했다.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가 “북한과 관련된 노래”라는 등의 억지 주장을 폈다고 한다. 엊그제는 보훈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듯한 단체들이 신문 광고를 내어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색깔론을 폈다. 정 총리가 말한 ‘반대 여론’은 아마 이들 단체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보훈처가 의견수렴을 한 것도 대부분 이들 단체였다.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의 이런 짜맞추기를 여론이라고 하니 가당치도 않다.
국회는 이미 지난해 6월 이 노래를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국 시·도의회와 시·군·구의회 의장협의회도 같은 결의안을 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도전하는 것이다. 되레 더 큰 국론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정부는 공식 기념곡 지정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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