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언론공작’ 실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이 들통나자 국정원이 위기를 모면하고자 사람 목숨이 걸린 비밀 정보를 몇몇 언론에 흘린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의 비공개 재판에 증언했던 탈북자 ㄱ씨가 소송 내는 걸 막으려고 ‘대가’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ㄱ씨가 자신의 탄원서 내용을 기사화한 <중앙일보> 기자에게 항의하자, 그 기자는 ‘탄원서를 국정원한테 받았다’고 실토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ㄱ씨의 고소로 시작한 검찰의 수사는 엉뚱한 곳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애초 ㄱ씨의 고소 내용은 두 가지였다. 자신의 법정 증언을 북한으로 유출한 사람과 자신이 법원에 낸 탄원서를 언론에 유출한 사람을 모두 찾아 처벌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 유출은 그 자체로 심각한 사안인 만큼 검찰이 수사력을 투입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검찰이 이 부분에만 매몰돼 언론 유출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국정원 직원들을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으로 처벌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최초로 ㄱ씨의 탄원서를 보도한 <문화일보>의 사회부장도 ㄱ씨에게 “당신이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앞뒤 문맥으로 봐서 정보 유출 주체가 국정원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국정원의 언론 유출은 불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처벌을 피하려고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이기까지 하다.
ㄱ씨가 유우성씨 사건의 비공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건 지난해 12월6일이었다. 한 달 뒤 그는 북한에 있는 딸로부터 “아빠 때문에 국가안전보위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거짓말로 겨우 수습하고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증언 내용의 북한 유출로 어려움에 처했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4월1일 이후 탄원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뒤다. 딸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연락이 완전히 끊겨버려 생사가 불투명해졌다. 북한 유출이 폭행이라면 언론 유출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국정원이 자기들 살겠다고 평소 이용하던 정보원을 헌신짝처럼 버린 셈이다. 게다가 국정원은 ㄱ씨에게 입막음용으로 대가를 얘기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죄행위를 가리기 위해 국가예산까지 손대려 한 것이다.
검찰은 지금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문제와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만으로도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의 언론 유출은 놔두고 북한 유출에만 수사력을 집중한다면 그 오명은 더 부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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