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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비통하고 부끄럽다

등록 2014-04-16 19:01수정 2014-04-16 23:42

수학여행에 나선 고등학생 등 462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300명 가까운 이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물이 들어차고 가라앉기까지 2시간 남짓 동안 벌어진 대참사다. 한밤중도 아닌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생때같은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니 어처구니없다. 숨진 넋들과 유족 앞에서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할 지경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조의를 표한다.

사고 상황을 들어보면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생존자들 말로는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사고가 난 직후 선박회사 쪽은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배 안이 물에 잠기는데도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고 배가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고 선실에서 빠져나가기도 어렵게 됐다. 그런 아수라장에서 열일곱살 고등학생들이 겪었을 공포와 혼란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

사고 직후 곧바로 선실 밖으로 대피하도록 안내했다면 훨씬 많은 승객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배가 거의 가라앉은 시점에도 배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신속하게 행동했다면 참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아쉬운 대목은 이것 말고도 많다. 사고 현장에는 구명뗏목들이 사용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박회사 쪽이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조직적으로 대피와 구조를 이끈 흔적도 별반 없다. 안전규정과 위난 때의 대피 수칙이 제대로 세워지고 작동되지 않은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고 신고가 접수된 뒤 군과 해경의 선박과 항공기, 민간어선들이 긴급 투입됐지만, 급한 해류 등 여러 사정 때문에 구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하기 힘들다. 실종자 수색이나 선체 인양 대책도 막연하다. 대형 사고에 대한 대책과 매뉴얼이 있기는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이후 대응도 어설프고 허술했다. 정부는 한때 승객 대부분을 구조한 것처럼 발표했다가 뒤늦게 집계 착오였다고 밝혀, 유족과 국민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지난 수십년 동안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사고 대응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어떻게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고 선박은 정해진 항로로 다니는 6825t급 대형 여객선이다. 암초로 인한 사고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운행 과정에서의 과실이나 선박 관리 부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사고는 정상 항로에서 상당히 벗어난 지점에서 벌어졌다. 또 사고 선박은 건조된 지 20년 된 중고 선박을 사들여 고친 것이라고 한다. 무리한 운행이나 과다한 개조가 침몰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한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건축물이나 교통수단 등에 엄격한 안전기준을 적용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일차적 책무다.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로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던 대학생들이 여럿 사망한 사고도 적설하중 기준이 낮게 정해졌고, 그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잘못이 있지 않았는지 샅샅이 살펴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같은 후진적 참사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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