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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세월호 국가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의한다

등록 2014-05-07 19:00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미국의 조사는 세 갈래로 진행됐다. 연방수사국(FBI)은 특별수사요원 1만1000여명 중 절반이 넘는 7000여명을 동원해 ‘펜트봄’이라는 이름의 미국 범죄수사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 복잡한 수사에 착수했다. 중앙정보국(CIA)은 사건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면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라는 이름의 초당적 특별위원회도 구성됐다. 이 위원회는 20개월 동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실관계와 정황, 원인, 대책 등을 꼼꼼히 조사해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마련한 각종 사후대책도 이 위원회에서 내놓은 41가지 권고사항에 기초한 것이었다.

정확한 진단 뒤 종합처방 나와야

이제 우리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조사와 사후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왔다. 많은 사람이 이번 비극을 계기로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고, 철저한 대책을 세우고, 나라 전체를 새롭게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일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종전에 해오던 방식대로 수사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새 기구를 만들고, 법률 몇 개 정비하는 하는 식의 땜질처방으로 국가개조 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사고의 조사와 수습 방식부터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관행으로부터의 탈피, 그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 던져주는 교훈의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수사는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사고 원인을, 인천지검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를 수사하는 등 몇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감사원도 안전행정부 등 4개 부처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정부는 국가안전처 설립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해사안전감독관 제도 도입 등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도 나오기 전에 처방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병을 덧나게 하는 얼치기 의료 행위일 뿐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검사제 도입과 국회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정부 대응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세월호 사건의 조사와 향후 대책 마련의 과정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비극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근인, 대처 과정의 문제점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여기에는 세월호의 직접적인 침몰 원인, 운항 과정의 위법행위, 구조적인 비리뿐 아니라 초동대처의 소홀함, 시간대별 조처의 문제점,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부처간 혼선 문제 등 사건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총망라돼야 한다. 조사에는 아무런 성역도 없어야 한다. 물론 청와대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둘째, 조사의 목적은 단지 처벌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처방전을 만들어내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단순히 관련자들의 의무 방기와 나태함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구조적 문제점들, 각 기관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애로사항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낱낱이 밝혀내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없이는 제대로 된 해법은 도출되지 않는다. 범죄 혐의를 밝혀내 기소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검찰 수사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 세월호 사고 조사와 사후 수습은 그 자체가 국민적 치유 과정이 돼야 한다. 세월호 침몰 이후 국민이 겪고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는 심각한 상황이다. 원망과 불신, 돌발사고에 대한 두려움 등을 국가가 나서서 어떻게든 치유하고 다독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의 문제점을 함께 찾아내고 재발 방지의 지혜를 짜나가는 과정은 국민의 아픈 기억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스스로 조사와 대책 마련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게 필수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정부가 온전한 수습의 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국가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의한다. 위원회는 단지 국회에 소속되는 것도 아니며, 대통령 직속 기구는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공동 발의’에 의해 구성되는, 정말로 ‘특별한’ 위원회가 돼야 한다. 그런 파격적인 위원회의 구성은 그 자체가 국가적 총역량을 집결하는 상징적 행위이며,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위원장을 비롯해 참여하는 위원들은 정파를 초월해 사회의 신망받는 인사들과 전문가들로 채워야 함은 물론이다.

정파 초월한 각계 전문가 참여가 핵심

이 위원회는 청문회 개최 등의 차원을 떠나 수사를 포함해 이번 사고 수습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기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의 검찰 수사도 위원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며, 필요할 경우 위원장이 지명하는 특별검사가 수사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공개·비공개 청문회 등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을 빠짐없이 만나 증언을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면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세월호 참사 국가특별위원회법’ 같은 법률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월호 사건의 제대로 된 수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서 비극의 진정한 승화를 통해 우리 어린 아들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방안이 무엇인지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 일에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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