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드러난 해경의 무능과 무책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살려주세요”를 외치는 단원고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으며 시간을 허비한 해경이었다. 300여명의 승객들이 선실에 갇혀 수장되고 있는데도 그저 눈 뜨고 바라만 보던 해경이었다. 고깃배 어부만도 못한 해경 실력의 현주소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 그 이면에는 썩어빠진 문화와 관행이 도사리고 있음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검찰이 며칠 전 선박 검사와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선급 임직원의 비리를 포착하고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개인 수첩과 메모는 깨끗이 지워졌고, 한 간부는 전날 휴대전화도 바꿨다. 압수수색 정보가 미리 샌 것이다. 그 장본인은 부산해경 정보과 소속 이아무개 경사로, 수사 정보를 문자메시지로 알렸다고 한다. 세월호 선박직 승무원들이 자신들만 갖고 있던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취하며 선원 전용 통로로 빠져나온 모습과 닮았다.
이에 앞서 한 해경 간부는 골프·음주 자제령이 내려졌는데도 버젓이 골프를 치다 적발됐다. 더욱이 이 간부는 세월호 사고 지점에 헬기를 투입해 수색·구조작업을 총괄하는 항공단장이었다. 팬티 바람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온 세월호 선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해경은 또 희생 학생들의 휴대전화 메모리카드나 카카오톡 등을 유족의 동의 없이 들여다봤다고 한다. 유족들은 “당국이 과실을 감추고 상황을 은폐하기 위해 이런 짓을 했다”며 격분하고 있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정조 시간을 착각해 사고 초기 수색작업에 잇따라 실패했던 것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 정도면 해경이라는 조직이 굳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뭔가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조직이라고 봐야 한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해경에 대해 “손발은 없고 머리만 비대한 기형적인 조직” “조직의 세 불리기에만 전념하는 관료들의 조직 이기주의” 등을 문제점으로 진단하고 있다.
경찰은 국가의 안전망이다. 경찰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지금의 해경에는 더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사법경찰권은 회수하고 재난 구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조직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퇴치 등 영해 보호는 해군이 맡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경찰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해경 지도부로 밀려오는 관행도 뿌리뽑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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