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대변인에 정신 나간 청와대 기자단.’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발언을 보도한 언론들에 대해 청와대 기자단이 기자실 출입 정지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저절로 터져나오는 탄식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계의 ‘출입처 1번지’로 불리는 청와대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수준이라는 말인가.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말 그대로 청와대,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정책 방향뿐 아니라 만족, 분노, 짜증 등 현재의 심경까지도 녹아들어 있다. 민 대변인의 ‘계란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가 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행동에 대한 청와대의 평가,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세간의 여론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언론으로서는 마땅히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안이다. 이렇게 중요한 발언을 안 쓰는 언론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청와대 기자단이 징계 이유로 내건 ‘오프 더 레코드’ 위반이라는 것도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다. 민 대변인의 발언은 국가안보상의 기밀도, 대통령 경호상 보안이 필요한 민감한 내용도 전혀 아니었다.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눈곱만큼의 이유도 찾아보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게다가 비보도 요청의 절차도 틀렸다. 민 대변인은 걸핏하면 “이것은 비보도인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이번에도 기자들한테 사전 동의도 구하지도 않고 ‘셀프 비보도’ 제한을 가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이 그렇게 말하면 모든 언론들은 ‘네,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해야 옳은가. 그런 얼빠진 비보도 요청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얼빠진 언론이다.
청와대 기자단의 행태는 권력 감시견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잊고 스스로 권력화한 일부 언론의 자화상을 잘 보여준다. 이미 이 발언이 1차로 보도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상황에서도 청와대 기자단 간사들은 계속 비보도 유지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쪽의 부탁과 협조 요청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을 하기란 어렵지 않다. “오프 더 레코드가 아니었어도 그 발언을 보도할 언론이 얼마나 됐겠는가” 하는 비아냥이 언론계 안에서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세월호 사건 이후 그렇지 않아도 만신창이가 된 언론에 청와대 기자단은 치명적 일격을 가했다. 언론의 사명뿐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내팽개친 청와대 기자단이 계속 존립할 필요성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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