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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또 ‘정치선동론’ 타령인가

등록 2014-05-11 19:06수정 2014-05-11 22:35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9·11테러 직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던 점을 거론하며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만 공격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은 일제히 ‘세월호 정치선동 악용’을 거론하고 나섰고, 보수단체의 집회에선 ‘세월호 정치선동꾼 척결’ 펼침막이 등장했다. ‘일부 좌파 세력’, ‘정치선동’ 등 익히 들었던 표현들이 다시 쏟아지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박 처장의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9·11은 외부 테러집단의 공격에 의한 것이고,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정부의 무능과 책임 전가에 대한 것이다. 박 처장은 또다시 국민 탓을 하고 있다.

안산에서 촛불집회를 연 인터넷 모임 ‘엄마의 노란 손수건’ 운영진에 대한 색깔 덧씌우기도 우려스럽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이 모임 공동대표인 정세경씨가 통합진보당 안산시 단원구 지역위원회 당원이며, 운영진에 전 민주노동당 시의원 후보자가 들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불순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추모를 내세워 정치 선동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정씨는 안산 반월공단의 한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에서 22년 동안 일해온 노동자라고 한다. 지역공동체 이웃이 희생된 참사를 애도하고 정부의 부실한 대처에 항의하는 데 당적이 문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진보당 당원이거나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던 사람은 추모할 자격도 없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면 매번 정권이 몰릴 때마다 색깔론과 정치선동론을 들고나오는 쪽이야말로 같은 얼굴들이다.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쏟아내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없는 사실을 지어낸 적도, 유언비어를 만들어낸 적도 없다. 모임 운영진의 당적에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다른 문제로 비판할 근거가 부족하고 논리가 궁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월호 추모집회를 정치선동, 정치투쟁으로 몰아세우는 기준도 매우 자의적이다. 보수 언론은 ‘박근혜가 책임져라’, ‘이런 대통령 필요 없다’ 따위의 구호를 문제 삼았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정치선동이요, 그렇지 않으면 ‘순수 추모집회’라는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의 온갖 병폐를 일시에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를 크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보수나 진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은 입을 꾹 다물고 관료집단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세월호 추모집회를 정치선동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흐름은 국민에 대한 침묵의 강요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불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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