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물러난 <한국방송>(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두 차례에 걸쳐 케이비에스의 보도 독립성과 관련한 폭로를 했다. 폭로 내용은 1985년 ‘보도지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경험을 찾아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그동안 권력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언론에 간섭한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 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와 한국방송 김시곤 국장의 자세는 다르다. 김 국장이 뒤늦게 각성을 한 것인지 아니면 배신당한 데 대한 앙갚음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건 외압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김 국장의 폭로 이전에도 국민들은 청와대와 케이비에스의 관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케이비에스 쪽에 “사과하라”고 요구하다 문전박대를 당하자 바로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케이비에스가 독립된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는 곳이라는 걸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콧방귀만 뀌던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 직접 사과를 하고 김 국장이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김 국장 발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청와대 쪽이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는 부분이다. 길 사장은 김 국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지만, 이미 방송된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같은 화면을 놓고도 <에스비에스>는 “3번째 빠져나온 승객 구경만 한 해경, 대피 지시도 없었다”고 해경을 중점적으로 비판한 데 반해, 케이비에스는 “구조 안간힘 해경 뒤로 줄행랑 선원들”이라는 타이틀로 해경보다는 선원들 비판에 중점을 둬 보도하는 등 증거는 여기저기 널려 있다. 청와대는 아마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데 대한 원망이 청와대로 번지는 걸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해경의 무능력과 안이함이 부각되면 그에 대한 비판이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를 타고 올라가 국무총리 그리고 결국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도달할 것이기에, 미리 끊어내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공영방송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진실을 보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청와대가 정권 보위의 수단쯤으로 여겼으니,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은 물론이고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마저 무력화시킨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며, 그 문제는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스스로 어긴 것이기도 하다.
김 국장의 폭로는 박 대통령이 요즘 습관처럼 되뇌는 ‘국가 개조’의 대상이 과연 누가 돼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길 사장은 물론이고,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 등 공영방송에 대한 통제와 간섭에 관여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철저히 조사하고 해임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인 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에도 즉시 착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초기처럼 머리 숙일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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