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이 19일 아침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에게 출근 저지를 당했다. 나중에 몰래 진입했으나 한국방송 사내는 사장 퇴진 구호에 휩싸였다. 한국방송 기자협회는 오후 1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고, 아나운서 13명도 함께하겠다고 결의했다. 또 팀장급 피디 54명도 보직사퇴를 선언하며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전국지역총국 취재·편집·촬영부장들도 퇴진운동에 동참했다.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의 ‘청와대 외압’ 폭로 이후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 되찾기’ 운동이 눈사태처럼 커지고 있다.
한국방송의 야당 추천 이사들이 길 사장 해임 제청을 결의한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이사들은 김 전 국장의 폭로는 한국방송이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청와대의 방송’”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길 사장은 이날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 전 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업무상 대화가 그런 식으로 과장·왜곡될지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오해이고 왜곡이란 식의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길 사장이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한국방송 사태는 더 큰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거두절미하고 문제의 핵심은 한국방송을 꼭두각시처럼 부려온 청와대에 있다. 한국방송이 ‘청와대 사내 방송’이라도 되는 양 청와대가 누구를 자르라느니 말라느니, 기사를 키우라느니 줄이라느니 사사건건 간섭한 것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한국방송 문제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전날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국장의 보도 통제 폭로와 관련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만 밝혔다. 침묵으로 이 국면을 빠져나가기로 ‘결정’했다는 얘기인데,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영방송을 청와대 앞잡이로 만든 청와대가 사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꼬리 자르기로 피해 가려 한다면 분노는 더욱 커지고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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