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해양경찰청 해체,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 관련 조직을 통합한 국가안전처 설치 등의 대책이 포함됐다.
이날 대국민 담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 대통령의 눈물이었다. ‘눈물 없음’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반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박 대통령이 담화 끝머리에 일부 희생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다 눈물을 흘린 대목은 일단 평가할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물샘이 마를 지경이 돼서야 나온 대통령의 ‘지각 눈물’이 화제가 되고 눈물의 ‘희소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현실은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사과나 눈물의 진정성 등과는 별개로 내용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보여줬다. 첫째, 여전히 ‘남 탓’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은 했다. 하지만 책임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청해진해운, 해경, 안전행정부 등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최소한 청와대가 정책 방향이나 초기 대응 과정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해야 옳았으나 철저히 침묵했다. ‘국가 개조’를 말하면서 가장 필요한 대통령의 개조, 청와대의 개조, 인적 구조 개조 의지는 전혀 없었다.
둘째, 박 대통령이 내놓은 해경 해체, 국가안전처 신설 등 많은 대책도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적폐’를 답습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대책의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날짜에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몇몇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만든 대책이 과연 제대로 된 대책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기구들을 없애고, 새로 만들고, 기능을 쪼개서 이리저리 갖다 붙이는 것을 서두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일의 순서가 틀렸다. 면밀한 진상규명을 통한 문제점 도출, 다양한 전문가들과 현장 목소리 수렴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대책부터 내놓은 것 자체가 오만함의 발로다.
셋째, 즉흥적이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발상이 너무 많다.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한 사람 등을 엄벌하는 형법 개정안 마련,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해 취득한 이익을 모두 환수하는 은닉재산환수법 제정 등을 언급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중죄인에게 수백년의 형을 선고하는 국가”의 형법 체계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충분한 검토나 논의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한국의 형사법 체계를 완전히 해체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법인의 잘못에 대해 대주주의 재산까지 환수하겠다는 발상 역시 법인 제도 등에 대한 기존의 법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내용이다.
넷째, 특검이나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 제안 등도 초점이 어긋나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특검은 청와대를 포함한 성역없는 진상규명에 무게가 실린 게 아니라 청해진해운 수사에 방점이 찍혔다. 진상조사위 구성 역시 정부당국이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데다 사건의 당사자여서 조사의 주체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의식 따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 할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정책, 생명의 존엄과 삶의 질 등은 뒷전에 밀린 현실 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국정운영의 근본적 방향을 바꿔야 하겠다는 인식이 있을 리 없다. 엄벌주의를 내세워 다그치고, 더욱 많은 깨알 지시를 쏟아내면 나라가 안전해지고 국민이 행복해지리라는 생각에서 박 대통령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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