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는 20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등의 빠른 논의와 처리를 국회에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한 국가시스템 개조 방안을 조속히 실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관련 법안을 서둘러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로선 마음이 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는 못한다.
담화에서 발표된 내용들은 국회가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가능하다.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를 만나 협력을 요청하는 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담화에서 국회의 협조를 당부하는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은 야당 쪽에 도와달라는 의례적인 인사말도 꺼내지 않았다. 국회에 대한 일방적 통보에 가깝다. 대통령이 고심 끝에 국가시스템 개조 방안을 정리해 발표했으니 국회는 군말 없이 법안을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다. 야당이 “국회마저 ‘받아쓰기 국회’가 될 수는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내놓은 방안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도 아니다. 해경을 해체하거나 안전행정부를 개편하는 등의 충격요법이 올바른 해법인지를 두고서도 적잖은 이견이 존재한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조차 여러 의원이 국가안전처 신설은 비현실적이란 반론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현행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정부 출범 당시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진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등 정부조직법이 야당의 반대로 난항에 부닥치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손을 내젓고 입술을 부르르 떠는 등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며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비판했다. 그렇게 밀어붙인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로 탄생한 안전행정부는 1년 남짓 만에 철저한 무능을 드러내며 조직이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이 이런 오류를 반면교사 삼지 못하고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일방통행을 이번에도 이어간다면 또다시 불행한 결과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국가 구난체계 개편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정부가 대통령의 구상을 ‘정답’으로 상정하고 ‘속도전 입법’을 밀어붙이는 태도는 위험하다.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나온 방안도 아니다. ‘국가개조’ 운운하면서 1개월도 안 돼 뚝딱 해법을 내놓은 것 자체가 조급함을 보여준다. 국회에서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하다 보면 얼마든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진전된 해법이 도출될 수 있다. 대통령이 발표한 방안에도 흠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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