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는데 19일 저녁 유가족들에게 발각됐다. 경찰은 이를 사과하면서도 “보호하거나 도우려 한 것이지 사찰이나 미행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유족 보호는 정보 형사들이 몰래 할 일도 아니거니와, 사찰이 아니라면 미행이 발각됐을 때 일부러 시비를 걸고 나온 가증스런 짓도 할 이유가 없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동향 파악을 위해 미행을 한 것은 명백한 불법사찰이다.
이런 짓은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린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손길은커녕 감시와 통제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상처를 또다시 짓이기고 정신적 외상 위에 또다른 복합외상을 가하는 야만적인 범죄행위다. 이를 저지르고 지시한 이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유족들에 대한 사찰이 세월호 참사와 그 희생자, 유가족들에 대한 이 정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 아닌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참사의 책임을 인정한 바로 그날, 침몰 현장인 진도로 내려가는 유족들을 미행했다. 앞에선 사과하고 위로하면서, 뒤로는 불법사찰을 한 꼴이다. 유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럴 수 없다.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뒤에서 대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유족 대표의 말 그대로다.
그런 이중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통령의 담화에는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실종자의 완벽한 구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가족대책위가 청와대 면담에서 요청한 ‘철저한 진상규명’의 구체적 방안도 담화문에선 여전히 모호하다. 그러고선 진상규명 이후에야 가능한 제도개선 방안만 급하게 나열하고 있다. 가족들의 고통보다 사태의 미봉과 정권의 안위만 중시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앞서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 유가족’ 따위의 말로 유가족들을 모욕하기도 했다. 이러고서 어떻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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