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1일 세월호 참사 관련 국정조사 요구서에 합의해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일단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새누리당 쪽이 “현직 대통령까지 국정조사에 포함시킨 전례가 없다” “국정에 전념해야 할 대통령을 국정조사에 부르면 국정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야당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무책임 문제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는 국민적 요구사항이자 유족들의 절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성역 지키기’에 사활을 걸었다. 그것이 단지 새누리당의 뜻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대통령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임을 이번 여야 합의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물론 박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참모들을 상대로 증언을 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생생한 육성증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어떻게 보고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고, 지시를 내렸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말하는 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것은 어떤 조처보다도 강렬하게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월호 사건의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점에 비춰봐도 대통령의 국정조사 제외는 잘못된 선택이다. 정작 ‘최종 책임자’는 조사 대상에서 빠진 이상한 모양새의 국정조사가 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단순한 립서비스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면 스스로 조사 대상이 되겠다고 청했어야 옳다.
9·11 사태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초정파적으로 구성된 ‘9·11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그것도 서면조사가 아니라 특별위원회 전체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10분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다만 증언의 형식과 절차 등은 현직 대통령임을 감안해 다른 증인들과 대우가 달랐다. 증언 내용 중에 고도의 국가기밀 사항이 포함될 수 있음을 고려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됐고, ‘선서’도 생략됐다.
우리도 미국의 경우처럼 증언 방식이나 형식, 예우 등을 잘만 갖추면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 사건이 지니는 무게는 미국의 9·11 사태에 견줘 결코 덜하지 않다. 여권은 “9·11 사태 이후 미국의 단결된 모습과 한국이 전혀 다르다”고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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