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총리가 21일 국회에 출석해 박근혜 정부의 방송통제를 사실상 실토했다. 정 총리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국방송에) 얘기했다는 것은 지금 이 사태가 위중하니깐 수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좀 지원해주고 사기를 올려달라는 그런 뜻으로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정 총리의 답변은 청와대가 <한국방송>(KBS)에 해경 비판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 내용을 뒷받침한다.
정 총리는 또 “제가 현장에 갔을 때 가족 중에 ‘언론에서 오보 또는 심한 이야기가 보도되는 바람에 정신적 피해가 많다. 언론을 통제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도 계셨다”며 “정확한 보도를 해달라고 협조요청 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고도 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고통을 청와대의 보도통제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삼는 매우 교활한 행위다. 실종자 가족은 ‘전원 구조’ 따위 대형 오보와 대통령 위주의 왜곡 보도 때문에 극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도 정 총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하는 척하며 실상은 그들의 아픔을 청와대 방패막이로 이용했다.
더 한심한 것은 청와대의 방송통제가 드러났는데도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은 무작정 부인하고만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21일 “청와대 외압설 관련해서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딱 잡아뗐다.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를 ‘정치적 목적의 선동’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한국방송 새노조가 “회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사람은 길 사장”이라고 했는데, 한국방송 사태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다. 심지어 길 사장은 한국방송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사람들을 불순세력으로 몰고 있다. 진실을 뻔히 아는 국민을 농락하는 짓이다.
청와대와 길 사장은 공영방송이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는 데 대한 국민과 언론인의 공분이 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22일 현직 언론인 5623명이 참여해 “청와대의 방송장악·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한 것은 그 분노가 어디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