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가 23일 93% 투표율에 94.3%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다. 94.3%는 한국방송 파업사상 유례없이 높은 찬성률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그동안 한국방송에 쌓인 적폐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그 적폐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계속된 권력의 방송 장악과 통제다. 방송의 권력 굴종이 얼마나 심했으면 ‘종박방송’이니 ‘청영방송’이니 하는 치욕스러운 별명이 나돌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다. 23일 한국방송 양대 노조와 기자협회·피디협회·경영협회 등 직군 대표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케이비에스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상징적이다. 길환영 사장의 배후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다고 정면에서 지목한 셈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지난번 대국민 담화에서 초강수 해법을 줄줄이 제시하면서도 정작 국민의 분노가 집중된 공영방송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불리한 일에 으레 해왔던 대로 침묵으로 깔아뭉개며 빠져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방송 사태는 시치미 뗀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일 시작된 한국방송 기자협회의 제작거부가 일주일을 넘겼지만 참여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보도본부 보직부장과 팀장들 대다수가 보직 사퇴를 하고 나선 것부터가 매우 이례적이다. 피디협회의 제작거부도 단계를 한층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새노조에 이어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방송 노동조합(1노조)도 파업 찬성 결정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길환영 사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기자협회의 제작거부와 함께 27일 이후 양대 노조의 파업이 강행되면 한국방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마비상태로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
열쇠를 쥔 사람은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정을 쇄신하겠다면 마음을 비우고 방송을 손아귀에서 놓아야 한다. 대선 때 약속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도 즉각 단행해야 한다. 지금의 구조 아래서 공영방송 사장은 청와대 꼭두각시 구실을 벗어날 수 없다. 25일 방송학자 229명이 성명을 내 ‘한국방송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과 통제 의혹을 규명하고 공영방송을 독립시키라’고 촉구한 것은 국민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언제까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방송을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국가 개조 타령을 계속할 것인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