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28일 새벽 화재가 발생해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또 일어났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침몰 이후에도 서울 지하철 열차 추돌 사고,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 등 끊이지 않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지 참담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특히 이번 화재는 2010년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 사건의 판박이다. 그때도 할머니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중증 노인 환자이기 때문에 대피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라는 걸 포항 화재사건은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저 몇 발짝만 떼도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해 화염에 휩싸이는 것이다. 포항 사건 뒤 노유자(노인과 어린이) 시설은 바닥면적 600㎡ 이상이면 건물 층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장성의 요양병원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돌봄이 목적인 요양원은 노유자 시설이지만, 치료가 목적인 요양병원은 노유자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에서 제외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차이를 둔 건 지극히 관료적인 발상이다. 결국 정부는 포항 요양센터 화재로 수많은 생명을 잃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셈이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중요한 건 스프링클러만이 아니다.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자동화재탐지설비도 필수적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눈과 코처럼 화재 발생 여부를 초기에 알 수 있도록 하고 경보를 울려주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소규모 노인요양시설은 대부분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639만명이고, 앞으로는 더 급격하게 늘어갈 것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요양병원도 급증하고 있다. 2002년까지는 전국에 54개뿐이던 요양병원이 2013년 12월 기준으로 1232개가 생겨 10여년 만에 20배 이상 늘었다. 급증하는 만큼 안전시설은 허술하고 안전관리에는 구멍이 뚫릴 가능성이 크다. 치매·중풍 등으로 거동이 쉽지 않은 노인들이 병상에 누운 채 꼼짝도 못하고 연기를 마시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재난과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