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다. 대법관 출신으로서 ‘하루 1000만원’이란 고액 전관예우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들끓는 비판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기부금 3억원을 낸 사실을 강조하고 변호사 개업 이후 증식한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돌리지 못했다. 기부 시점이 총리 지명 이후로 밝혀지고 총리직을 돈으로 사려 한다는 질타가 쏟아지면서 오히려 화를 자초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총리 후보자가 불미스런 전력으로 낙마한 데는 청와대 책임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에 민심을 헤아릴 의사나 읽어낼 능력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황제 전관예우’란 지적이 나오는 인물을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로 내세운 청와대의 어처구니없는 상황 판단은 할 말을 잊게 한다.
청와대가 제대로 검증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만약 고액 수임료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면 무능하거나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청와대가 안 후보자의 전관예우 전력을 알고서도 후보 지명을 강행했다면 더욱 큰 문제다. 인사 검증의 첫 관문이 재산 문제라는 점에서 청와대는 안 후보자의 고액 수임료 문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안 후보자를 후보로 지명했다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결국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눈높이’로 총리 후보자를 검증했다는 것인데 청와대 참모진의 기능이 크게 고장 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 등 실무적으로 검증을 책임진 인사들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번 사태에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박 대통령이다. 후임 총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일시에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는 데 선두에 서야 할 인물이다. 그만큼 지명에 앞서 능력과 자질, 과거 전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마땅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책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상태여서 후임 총리 지명을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지명한 5월22일은 6·4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당일이었다. 선거를 의식한 ‘졸속 검증’이 빚은 인사 참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기본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인사파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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