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사원들이 결국 파업으로 내몰렸다. 양대 노조와 직능협회 등 거의 모든 한국방송 사원들이 한목소리로 길환영 사장의 해임을 촉구하는데도 한국방송 이사회는 끝내 이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9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이사회는 길 사장 해임안 표결을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5일로 연기했다. 한국방송 양대 노조는 29일 새벽 5시를 기해 파업에 들어갔다. 보도프로그램이 제작인력의 파업 합류로 마비상태에 빠졌고 일부 교양·오락프로도 불방되거나 축소됐다. 갈수록 방송 파행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의 주된 책임은 한국방송 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들에게 있다. 이사회의 과반수(11명 중 7명)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이사들은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출한 길 사장 해임안의 사유에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느니 하는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여권 이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 자리에서 문구를 수정했지만, 결국 표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당 이사들이 왜 표결을 미뤘는지 그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권에 불리한 문제이니 일단 지방선거 뒤까지 미뤄두고 눈치를 보자는 뜻으로 보인다.
한국방송 이사회의 이런 기회주의와 무책임성도 문제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장본인이 길 사장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길 사장은 한국방송 양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근로조건이 아닌 사장 퇴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불법파업”이라고 반격하며 징계와 민형사 소송으로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원들에 대한 그런 막무가내 위협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양대 노조 3700여명 중 80% 이상이 압도적으로 파업에 찬성했고, 기자협회·피디협회·아나운서협회 등 16개 사내 직능단체들이 모두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보도국 보직부장 전원을 포함해 330여명의 간부들이 보직을 내놓고 파업에 동참한 상황이다. 사실상 한국방송 전체가 똘똘 뭉쳐 길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길 사장의 으름장은 한국방송 구성원 전체와 싸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버틸수록 추함만 더할 뿐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했듯이 한국방송 사태의 최종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청와대의 방송 장악과 통제가 한국방송 파업의 근본 원인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길 사장이 버티기를 계속할수록 청와대를 향한 국민의 비판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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