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파동은 안 후보자 본인의 처신 문제만은 아니다. 이 사안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가 개조니 과거 적폐 해소니 하는 말의 허구성이 담겨 있다. ‘전관예우쯤이야’ 하는 안이한 판단, 인사의 ‘안전운행’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는 무신경함이야말로 뜯어고쳐야 할 적폐임을 이번 파동은 잘 보여준다. 근본적 성찰도 없이 정면돌파에만 신경을 쓰는 무모함, 민심을 얕잡아보는 오만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안대희 침몰 사고’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안대희 파동의 한복판에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자리하고 있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안 후보자의 흠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검찰 통치’를 더욱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새까만 검찰 후배인 안 후보자가 다루기 편할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김 실장 취임 이후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피케이(부산·경남) 중용’의 연장선상일 수도 있다.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홍경식 민정수석 역시 안 후보자의 사법시험 1년 후배에 같은 피케이 출신이니 제대로 된 판단은 구조적으로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낡은 틀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 인사쇄신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현실에서부터 이미 참사는 예고된 셈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김 실장이 곧바로 사표를 내는 것이 상식에 맞다. 하지만 이런 대형사고 속에서도 청와대 쪽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오대양 사건’ 수사 방해 의혹을 제기한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을 김 실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는 엉뚱한 소식만 들려온다. 세월호 사건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더니 또다시 명예훼손 타령이니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돌아간다. 무엇이 그리도 두렵고 걱정되는지 김 실장이라는 낡은 동아줄을 놓지 않으려 한다. 여권 한쪽에서는 “총리와 비서실장을 동시에 문책하면 국정운영 공백이 우려된다”고 말하지만 결코 이유가 될 수 없다. 잘못된 총리 후보자 천거로 국정의 공황 상태를 일으킨 것을 보면 부질없는 기우에 불과하다. 김 실장에 대한 문책 여부가 박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떠올랐는데도 박 대통령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다. 국정운영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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