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2011년 1월 이런 쪽지를 남기고 지병과 생활고 끝에 숨진 사실이 알려진 뒤 제정된 것이 예술인복지법이다. 최고은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된 곳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예술인복지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시행하는 사업 가운데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이라는 게 있다. 재단은 생활이 어려운 예술인에게 달마다 100만원씩 3~8개월 동안 지원하는 내용의 복지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2월부터 접수를 받았다. 많은 예술인이 구명줄을 잡는 심정으로 이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석달이 지나도록 지원대상자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재단이 5월13일 ‘건강보험료 납입고지액이 최저생계비(2014년 4인가구 기준 월 163만원) 200% 이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지원기준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가입 형편이 안 돼 가족의 피부양자로 들어간 사람들이 대거 탈락한 것이다. 지원자들의 거센 항의에 재단은 다양한 개별 사안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긴급지원’이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최고은법은 진작부터 여러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다. 입법 과정에서 4대 보험 혜택이 빠진 것도 문제고, 지원 대상 규정이 협소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는 점도 문제다. 부족한 예산 탓에 지원자 자격을 어떻게든 제한하려 한다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이 이 제도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화배우 우봉식씨가 그런 경우다.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이 문제가 된 것도 결국은 쓸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게 근본 이유다. 정부는 이제라도 어려운 형편에 놓인 예술인들의 처지를 헤아려 지원책을 현실화하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