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중점적으로 내세운 것이 이른바 ‘레임덕 위기론’이다.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패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급격한 권력누수 현상이 빚어져 국정 마비 사태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막아달라는 여권의 호소는 선거전략으로는 훌륭할지 모른다. 유권자의 안정희구 심리를 자극하고 지지층의 표를 결집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다. 쉽게 말해 전형적인 ‘엄살 작전’이다.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말해주는 지표나 상황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20%대를 넘지 못하는 낮은 지지율, 정치적 지지 기반의 붕괴,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들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한 분열 현상 등이다. 이런 것들이 상호 증폭 작용을 일으키면서 대통령이 완전히 국정장악력을 상실해 ‘식물 대통령’의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 레임덕이다.
과연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에게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란 초대형 악재 속에서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결코 일정선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지역·이념·계층·세대별로 강고하게 포진한 지지층은 여전히 박 대통령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여권에 대통령을 무시하고 조기 대선 행보에 나설 만한 ‘미래 권력’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혹시 여권이 말하는 레임덕이라는 것이,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이 고개도 제대로 못 드는 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든가, 여당을 청와대의 수족으로 부리는 데 종전보다 다소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의 레임덕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지금은 과도하게 차고 넘치는 박 대통령의 권력에서 ‘배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권을 무시하는 반민주주의적 공안통치의 약화, 검찰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조금 무뎌진다는 뜻에서의 권력장악력 약화는 바람직한 일이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한 자극과 경고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레임덕과는 무관하다.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심판이 곧바로 대통령의 레임덕과 동의어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방선거 결과가 박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승리하면 박 대통령은 이를 곧바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사면 조처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또 이런 결과를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해석해 더욱 자만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것은 야당의 불행 정도를 떠나 여권과 대통령의 불행, 나아가 나라의 불행이다. 지금은 권력의 누수보다 오히려 권력의 횡포를 더 걱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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