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이사회가 5일 길환영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해임 절차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해임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길 사장 해임 결정은 사필귀정이다. 하지만 이사회 결정은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공영방송의 위상 회복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길 사장 해임은 예고된 일이었다. 길 사장은 스스로 물러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막무가내로 버티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난달 초 세월호 유가족이 한국방송을 항의방문한 것을 계기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길 사장에 대한 한국방송 내부의 거부 기류는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일선 기자·피디들뿐만 아니라 보도본부 부장단을 포함해 팀장급이 대거 보직을 사퇴하며 거부 대열에 합류했다. 또 양대 노조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을 택했다. 이런 와중에 길 사장은 이른바 ‘충성 맹세’에 동참하지 않은 제주총국장 등을 사퇴시킨 데 이어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보도본부 부장 6명을 지역총국의 평기자로 기습 발령 내는 ‘보복 인사’를 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었다. 한국방송의 거의 모든 사원·간부들이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을 거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이사회는 길 사장으로는 한국방송이라는 거대 조직을 이끌 수 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길 사장의 해임안 통과로 벼랑 끝으로 달려가던 한국방송의 극한대치 상황은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길 사장 해임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임을 한국방송 이사회와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 한국방송 파업사태의 근본 원인은 공영방송을 청와대 안방 방송처럼 주무른 청와대의 간섭과 통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선은 누구를 후임 사장으로 임명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영방송의 위상에 걸맞은 균형감을 갖춘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 청와대 눈치나 살피는 ‘제2의 길환영’이 나온다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사태의 바탕에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의 미비가 있다는 지적에 청와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방송이 진정 국민을 위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장선출제도 등을 포함해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이런 문제까지 해결해야 박근혜 정부의 손상된 신뢰도 회복될 수 있고 공영방송도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