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진보정치에 던진 경고는 매섭고 준엄하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정당지지율이 반토막났다. 노동당, 녹색당은 ‘2% 득표’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각각 0.62%와 0.55%에 그쳤다. ‘진보정치 1번지’로 불리는 울산에서조차 시장과 5개 기초단체장, 선출직 시의원 19명을 새누리당에 싹쓸이당하는 무기력을 드러냈다. 기초단체 226곳에서 단 한명의 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진보정당의 초라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진보정당의 지방선거 성적표를 보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한때 ‘후보 투표는 민주당, 정당 투표는 진보정당’이라는 구호가 먹히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민은 단일대오를 형성한 민주노동당에 10석을 몰아줬다. 사분오열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4개의 진보정당이 각개약진하고 있는 지금 국민은 무관심을 넘어 냉소를 보내고 있다. 투표장에서 이들 진보정당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진보정당의 약화는 결국 한국 정치 전반의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진보정당은 한때 과감한 정책과 의제들을 선도하며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변화들을 이뤄냈다. 진보정당이 발굴한 진보적 정책들이 야당이 수용하고 여당이 협조하는 과정을 거쳐 결실을 맺었다. 전국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무상급식, 영유아 무상 예방접종, 장애인·노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 등의 정책이 이런 과정을 통해 빛을 봤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이 조직적 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정책적 선도 역량이 크게 퇴조하고 말았다.
이번 지방선거는 한국의 진보정치에 ‘총체적 재구성’을 핵심 과제로 던졌다. 그렇다고 ‘묻지마 단일대오’가 해답은 아니다. ‘헤쳐모여식 이합집산’은 또다른 분열의 씨앗이 되기 쉽다. 대중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점에서부터 차근차근 진지하게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출발점은 ‘대중의 눈높이’다. 무엇보다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이 대거 당선됐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란다. 진보 교육감들은 단일대오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혁신학교 등 교육분야에서 대안세력으로서의 실력과 성과를 대중에게 보여줬다. 진보정치에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할 때 비로소 대중들도 진보정당에 마음을 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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