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지명했다. 안대희씨가 ‘고액 전관예우 수임료’로 낙마하자, 충청권 출신의 보수 언론인을 선택한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박 대통령의 정국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문 후보자는 관료조직에 몸담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일단 전관예우나 ‘관피아’ 논란에서 자유로운 측면이 있다. 충북 청주 태생에 부모가 평북 삭주 출신인 문 후보자는 ‘영남 편중 인사’ 시비에도 걸리지 않는다. 총리 후보자 2명의 낙마를 경험한 박 대통령으로선 문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통과할 것이라고 기대한 듯하다. 언뜻 보면 박 대통령이 영남과 대선캠프 출신, 법조계, 관료 위주의 수첩인사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평가할 요소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문창극 카드’를 국민통합형 총리 인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 후보자는 극심한 우편향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 각종 칼럼을 통해 복지 확대를 앞장서 비판하는 등 극보수적 이념 성향을 내보였다. 학교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세웠고 안보와 전교조 문제 등에서도 강한 보수성을 드러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 후보자를 ‘극우보수 인사’로 규정했다.
문 후보자가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고 관료조직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인지도 매우 의문이다. 문 후보자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자리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사람이다. 박 정권 스스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단체장 자격도 없다고 평가했던 사람을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로 발탁한 꼴이다. 총리 인선의 기준과 근거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반대파에 손을 내미는 통합형도 아니고, 공직·관료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책임형도 아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휘하에서 정홍원 총리처럼 ‘대독형 얼굴마담 총리’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지금까지의 ‘마이웨이식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총리와 내각에 책임과 권한을 나눠주기보다 청와대 참모진에 의존하는 ‘만기친람식 받아쓰기 깨알리더십’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행여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오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여권에서조차 지방선거 결과가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경고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음을 박 대통령이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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