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26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 또 후퇴했다. 정부는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 끝에 13일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수정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다주택 보유자의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을 더 깎아주고 과세 시기도 늦춘다는 게 뼈대다. 이로써 주택임대시장을 투명하게 하며 전월세 소득에도 정상적인 세금을 매긴다는, 선진화 방안의 원칙은 넉달여 만에 사실상 흐지부지되는 양상이다. 그동안 주택시장에 큰 혼란을 줬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더욱 팽배해졌다.
애초 2·26 방안은 주택임대차시장 양성화, 임대소득 과세 강화,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에 초점을 맞췄다. 큰 방향과 취지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시장 영향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발표하는 바람에 부동산업계와 집부자가 많은 지역의 유권자들로부터 거센 발발을 샀다. 그러자 일주일여 만에 부랴부랴 ‘3·5 보완대책’을 내놓더니 국회 입법안 제출을 앞둔 시점에 다시 부동산업계 목소리를 대폭 반영하는 쪽으로 손질했다. 결국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세제는 누더기가 돼버렸다.
정부는 이번 수정안에서 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이면 보유주택 수와 상관없이 최고세율이 38%에 이르는 종합소득세 대신 14%의 단일세율로 분리과세하기로 했다. 말이 14% 세율이지 필요경비 공제 등을 적용하면 실효세율은 고작 1~3%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월세나 전세보증금 이자로 달마다 100만원 넘는 소득이 있는 계층에 적용하는 세금치고는 너무 적다.
과세 유예 기간도 길어졌다. 처음에는 올해 소득분부터 적용하기로 했으나 2016년으로 한번 미뤘다가 이번에 2017년으로 1년 더 늦췄다. 그동안 부동산 경기를 핑계로 집부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나 취득세 감면 혜택이 계속 연장된 경험을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 임대소득 과세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이 나아지더라도 ‘모처럼 좋은데 찬물 끼얹기냐’는 식의 반발에 정부가 무릎을 꿇을 게 뻔하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주거 안정과 주거 이전의 자유를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전체 가구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무주택 계층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보다 집을 여러 채 가진 부자와 부동산업계의 이익에 더 충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대폭 후퇴한 게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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