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3일 저녁 기자들과 만나 경기 부양 조처와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주택 구입자금 대출 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과거 부동산시장이 한여름일 때 만든 여름옷’으로 비유한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한겨울이 왔는데 여름옷을 입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취임하면 곧바로 엘티브이와 디티아이 규제를 손보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이런 정책 구상에 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기적인 경제활성화 효과에 집착해 금융안정과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엘티브이와 디티아이 같은 부동산 대출 규제는 가계부채의 악화와 금융부실의 확산을 막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다.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할 성질의 규제가 아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나 금융당국에서도 엘티브이와 디티아이 규제는 거시건전성과 금융안정의 핵심 도구라는 인식이 여전히 확고하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모범적이라고 칭찬받았던 규제가 바로 엘티브이와 디티아이다.
반면에 새누리당과 정부 일각에선 틈만 나면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는 목소리를 내왔다. 최경환 후보자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올해 4월 새누리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민생경기와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엘티브이, 디티아이 등 자금차입 규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동산 대출 규제를 ‘한겨울에 입고 있는 여름옷’이라고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경기 띄우기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중 여윳돈을 부동산시장으로 유도하면 체감경기를 단기에 끌어올릴 수는 있다. 부동산거래가 늘어나고 민간 건설투자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을 통한 경기 진작은 국민경제 전체에 ‘독약’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비 부담 증가로 민간소비에도 제약을 받을 공산이 크다. 반짝 부동산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계층이나 투기세력한테만 혜택이 돌아갈 뿐이다. 최경환 후보자를 수장으로 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무모한 도박’에 나서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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