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6·15 남북공동선언 선포 14돌을 맞았다. 특히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형적인 북한붕괴론자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터여서 더 착잡하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2011년 교회 특강 외에 2012년 교회 방송에서도 북한 체제는 붕괴될 것이며 남북 사이의 대화와 협상은 소용없다는 발언을 했다. ‘누구도 예측 못할 때 하느님의 섭리로 북한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가장 강경한 수준의 북한붕괴론자인 셈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그 자체가 통일의 걸림돌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가 얘기해온 대북·통일 정책 기조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에도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자가 총리가 될 경우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관련 사안을 풀기 위한 대외정책도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그렇다. 그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공산주의는 협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터치가 필요하다’며 민주화의 기독교화를 강조했다. 균형외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이 주관적 환상에 갇혀 있는 ‘골방 논리’다. 지난 20여년 동안 구축해온 대중 외교의 성과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면서도 이들 정책의 취지와 충돌하는 생각을 가진 문 후보자의 지명을 밀어붙인다.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면 기존 정책의 허구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태다. 사실 기존 정책은 이미 많은 부분 생명력을 잃은 상태다. 최근 발표된 안보팀 인사도 전기를 마련하기에는 약했다. 여기에다 문 후보자 같은 이가 더해진다면 모든 것이 뒤엉키게 된다.
6·15 선언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남북은 이미 사실상의 통일 초기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 기념행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다.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 지명을 고수하는 한 북한붕괴론 확산을 꾀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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