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의 양대 노조와 16개 직능협회가 새 사장 선임 방식으로 ‘특별다수제’(이사회의 3분의 2 이상 찬성)를 한국방송 이사회에 요구했다. 양대 노조와 16개 직능협회면 사실상 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사회와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현행 방송법상 새 사장은 1개월 안에 뽑도록 돼 있기 때문에 특별다수제를 법으로 제도화하는 데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이사회가 특별다수제 방식으로 사장을 뽑고, 이후 방송법을 개정해 법률로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
현행 한국방송 이사회 구성과 선임 절차로는 제2의 길환영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이사회는 정부·여당 추천 이사 7명과 야당 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되고 이들이 과반수 찬성으로 사장을 뽑는다. 정부·여당을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이 사실상 이사회를 지배하고 사장을 낙점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 권력의 직할통치를 막는 손쉬운 방안이 특별다수제다.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할 경우 야당 추천 이사들의 동의를 얻어야 사장을 정할 수 있고, 그런 절차를 거쳐 뽑힌 사장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별다수제 실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최소 요건을 충족시키는 한 방안이기도 하다. 지난해 여야 정치권이 언론공정성특위를 가동한 것은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뜻이었지만, 8개월 동안 공전만 하다 빈손으로 끝나고 말았다. 야당 의원들이 이 제도를 제안했지만 여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별다수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상식 있는 언론학자들도 대부분 찬성하고 있다. 그런 제도를 거부한 것은 방송을 계속 권력 밑에 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결국 길환영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방송 구성원 전체가 특별다수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한국방송 정상화를 위해 다행스런 일이다. 이 기회에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제안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사들이 사장 후보를 내정하지 않고 언론·시민단체가 참여한 사장추천위원회가 적합한 인물을 추천하는 것은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권력 입김을 차단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방송이사회와 정치권은 특별다수제를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제2의 길환영’이 또 나온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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