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17일 대법원은 중요 상고사건의 심리를 맡고 일반 상고사건은 상고법원을 새로 만들어 여기서 재판하는 방안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법령해석의 통일에 필요하거나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안은 상고사건 폭증으로 대법원이 제대로 심리를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상고사건은 지난해 3만6100여건으로,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대법관 한 사람이 매달 250여건을 처리해야 한다. 업무 부담이 크다 보니, 개별 사건을 충실히 심리해 하급심의 오류를 수정하는 ‘권리 구제’의 기능을 하려면 항상 허덕일 수밖에 없다. 사건 수를 줄이려고 심리나 판결 이유 기재 없이 바로 상고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제도도 도입했지만, 심리불속행 사건이 전체의 70%에 육박하면서 불만만 커졌다.
대법원의 ‘법률심’ 기능에도 아쉬움이 많다. 대법원의 본래 기능은 법령해석에 대한 보편타당한 결론을 내어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고 사회의 근본 가치질서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실제 현실에선 단순사건 처리에 매달리느라 사회적으로 영향이 큰 사건의 심리에 힘을 쏟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안은 정책법원 기능과 국민의 권리구제를 아울러 보장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고법원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어떻게 사건을 나눠 맡을 것인지, 상고법원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재판을 요구하는 기준과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상고법원으로도 헌법상의 3심제가 보장된다지만, 대법원 재판을 받지 못하는 당사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상고법원 신설로 심리불속행 사건이 줄어들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상고법원 설치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까지 올라오는 사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30%를 훌쩍 넘었다. 당사자들이 여전히 하급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고심 개편 논의에서 하급심 강화가 대전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대법원이 정책법원의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대법관 구성에서부터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책법원을 천명하는 터에 법관 일색을 고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상고법원 추진에 앞서 이들 과제를 아우르는 충실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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