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던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보고하는 형태로 공개했다. 핵심 내용은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양국 정부가 문안 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도 들어 있다. 고노담화의 내용이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외교협상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시사하며 담화의 의미를 깎아내리자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말장난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치졸한 처사다.
검증보고서는 몇 가지 점에서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다. 우선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쪽은 한-일 정부 간에 문안 조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문안 조정이라기보다 일본 쪽의 일방적인 접촉 요구가 맞다. 고노담화가 발표될 당시 주일한국대사관에서 실무자로 근무했던 조세영 당시 서기관의 증언에 따르면, 담화의 문안을 놓고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우리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우리의 이런 자세에 일본이 오히려 한국 쪽에 책임 전가를 하지 않겠으니 상담에 응해달라고 매달려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둘째, 한-일 간에 이뤄졌다는 문안 조정의 내용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일본 쪽은 구체적으로 고노담화에 명시된 위안부 모집의 주체와 관련해, 일본 쪽의 원안에는 ‘군 당국의 의향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한국 쪽의 주장을 배려해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우리 외교당국의 말과 전혀 다른 일방적인 주장일뿐더러, 설사 한국 쪽과 문안 협의가 있었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수개월간 피해자 면담 및 자료조사를 통해 자신의 책임으로 발표한 담화 내용을 이제 와서 검증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는 걸 일본은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이 아베 정권이 추진중인 역사수정주의 작업의 하나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결같이 일본의 패전으로 형성된 질서를 부인하는 작업을 해왔다. 도쿄재판에서 에이(A)급 전범으로 처벌받은 14명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평화헌법을 수정하려는 것과, 일본의 가장 큰 수치인 위안부 문제로부터의 탈출은 한 꾸러미로 엮여 있다.
이렇게 담화 내용을 훼손해놓고도 일본은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이런 일본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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