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일 내놓은 이른바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의 정식 이름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의 교섭 경위-고노담화 작성에서 아시아여성기금까지’이다. 표지까지 포함해 A4용지로 25장 분량이다. ‘고노담화 작성 과정 등에 관한 검토팀-검토회에서의 검토’로 되어 있는 본문이 2장이고, 고노담화의 작성 경위와 한국에서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사업 경위를 서술한 별첨자료가 목차를 포함해 22장이나 된다.
보고서의 구성만 봐도, 일본 쪽이 이번 검증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뒷부분에 장황하게 붙여놓은 별첨자료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내용에서도 일본 쪽은 본문에서 ‘이번 검토작업을 통해 열람한 문서 등에 기초하는 한, 그 내용이 타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간단하게 언급한 뒤, 첨부자료에서 노태우·김영삼 두 대통령의 발언까지 거론하며 고노담화 작성과 여성기금 설립 및 사업에 한국 쪽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을 부각하려고 용을 썼다. 그것도 자신들이 비밀로 하자고 제의한 외교교섭 내용을 상대의 동의도 없이 자신들한테 유리한 대목만 발췌하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외교 결례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에 대한 멸시이자 외교적 선전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위안부 도발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응도 불가피해졌다. 분명한 것은 일본 쪽이 겉으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담화 내용을 훼손한 이 심각한 사태를 성명 발표나 대사 초치 항의 등 형식적인 외교적 항의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일본 외무성은 보고서 발표와 함께 영문판 보고서도 누리집에 띄워놓고 있다. 이런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검증 결과를 가지고 국제 홍보전을 벌이겠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일본 쪽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충실한 정부보고서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계 및 시민단체까지 아우르는 범국가적인 팀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1993년 고노담화 발표 이후 국내외에서 발굴된 자료와 연구 성과까지 모두 반영해,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일본군 군대 위안부 백서’를 낸다는 각오로 임하기 바란다. 정부가 그간 오락가락했다면 이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도발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정부는 중국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국들과의 공조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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