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낙마 파동’이 엉뚱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분풀이라도 하듯 언론을 탓하고, 청문회 제도를 손대려 하고,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마치 대단한 애국자가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된 듯한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낌새마저 느껴진다. 총리 후보자 2명이 연거푸 물러난 데 따른 책임은 고사하고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실패’라는 본질조차 흐릿해지고 있다. 본말전도와 적반하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파동을 ‘인사청문회 무시’, ‘법치의 무력화’, ‘절차 민주주의 훼손’ 따위로 규정하는 것은 인사 실패라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결격 사유가 드러난 공직 후보자의 사퇴로 청문회가 열리지 않았다고 법치가 무력화될 리 만무하다. 청문회는 철저한 후보 검증을 위한 제도다. 후보자가 청문회 검증대에 서기도 전에 스스로 사퇴했다는 것은 결격 사유가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걸 말해주는 반증이다. 김용준·안대희씨 등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자 2명이 이미 청문회 이전에 스스로 사퇴했지만 인사청문회는 여전히 건재하다.
더구나 청문회가 불발된 일차적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청와대가 문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냈다면 어쨌든 청문회 절차는 진행됐을 것이다. 야당은 문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면서도 청문회 위원장까지 선임한 상태였다.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재가를 좌고우면한 이유가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부마저 ‘문창극 자진 사퇴’를 주장할 정도로 거센 비판여론 때문이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청문회 무산에 따른 법치 무력화론’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설사 그것이 진정 걱정거리라면, 부결될 것이 두려워 임명동의안 자체를 국회에 보내지도 않은 대통령과 끝까지 버티지 않은 문 후보자를 비판해야 마땅하다.
<한국방송>(KBS)에 대한 ‘마녀사냥’도 도를 넘어섰다. 심지어 한국방송의 문 후보자 보도를 ‘국민 눈·귀 속인 중대범죄’로까지 규정했다. 공직 후보자 검증은 언론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청문회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한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른바 ‘조·중·동’도 뒷짐만 지고 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 지명자인 김용준 후보자가 낙마한 건 <동아일보> 보도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중앙일보>가 25일치 1~6면과 사설, 칼럼을 총동원해 한국방송의 보도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 후보자가 그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강경보수세력이 문 후보자 자진 사퇴를 계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역공을 펴면서 사태가 본질과 동떨어진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사 실패’라는 핵심이 흐려지면서 책임론도 가물가물해지는 분위기다. 부실 검증 책임론을 벗어나기 어려운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번에도 유임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실패한 인사의 ‘최종 책임’이 있는 박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다. 그저 남 얘기 하듯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한 게 전부다. 박 대통령은 선장을 탓하고 선주를 욕하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자신의 최종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세월호 참사 당시의 기억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