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청와대부터 일선 해경까지 누구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자료 요구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정부가 2일 새벽에야 제출한 청와대와 해양경찰청의 핫라인 통화 내용 등을 보면, 그 답답하고 한심한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나 하나같이 무능하고 안일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당시 청와대의 태도다. 녹취록을 보면, 청와대는 사고 발생 얼마 뒤 해경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상황 파악에 나섰지만 그저 상황을 알아보는 데 그쳤다. 한가하게도 현장 영상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정부의 역량을 기울여 대대적으로 구조에 나서도록 지시하거나 적극적인 조처를 취한 흔적은 전혀 없다. 이미 배가 가라앉아 승객 다수의 희생이 돌이킬 수 없게 된 시점에 ‘단 한 명의 희생도 없게 하라’는 구름 잡는 듯한 대통령 지시만 내려보냈을 뿐이다. 긴급 재난 상황에서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아예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사건 당일 오후 2시30분이 넘도록 생존자가 370여명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뒤늦게 해경으로부터 생존자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말을 듣고서는 대통령에게 숫자를 잘못 보고한 것만 걱정했다. 청와대는 해경과의 통화 내내 구조 상황을 확인하고 지시하는 일보다 대통령 보고를 위한 생존자 수 확인에 급급했다. 그러고도 이날 오후 늦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엉뚱한 질문으로 희생자들 대다수가 배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보고조차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청와대가 이렇게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졌는데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할 리 없다.
해경의 한심한 모습도 확인됐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한참 뒤까지 사고 경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배가 심하게 기울어 사실상 전복된 상황인데도 “구조단계는 아니고 지금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고 태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선 자신들 대신 주변의 상선과 어선이 구조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처럼 청와대 쪽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찾을 길 없다.
해경은 다급하게 구조에 나서야 할 헬기를 해양경찰청장이나 해양수산부 장관을 실어나르는 의전용으로 빼돌리기까지 했다. “구조하는 사람을 놔두고 오라 하면 되느냐”는 반발이 나오자 급유 핑계로 이동하라며 거짓말까지 강요했다. 정부 조직이 국민의 생명보다 고위 공직자들의 편의를 더 급한 일로 여긴 것이다.
자신의 책무를 망각한 이런 행태 하나하나가 살릴 수도 있었던 생명을 잃게 했다. 제대로 된 나라로 바꾸겠다면 그 진상을 드러내고 책임을 따져묻는 일부터 확실하게 마쳐야 한다.
천근아 "세월호 유가족, 쉽게 잊힐까 봐 두려운 고통"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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