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두고 관련국들의 ‘해석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대한 것보다 밋밋한 수준의 공동성명이 발표됐으나, 회담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하다. 정부가 한반도·동북아 관련 의제에서 좀 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미국과 일본은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일본군 군대 위안부, 집단적 자위권, 미사일방어 체제, 한-미-일 안보협력 등 두 나라에 껄끄러운 내용이 공동성명과 기자회견 발언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4일 공동성명 부속서에 한-중 위안부 공동연구 관련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 반발했다. 이는 최근 위안부 문제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끄러운 행태다.
중국 쪽은 한·중의 대일 공동보조를 거듭 강조했다. 미·일을 의식해 이 사안에 대해 소극적인 정부와 대조를 이룬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날 서울대 특강에서 과거 두 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함께 맞선 여러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돌’ 기념행사를 내년에 함께 열자고 제안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했다’고 했으나 시 주석은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두 나라의 입장 차이를 반영한다. 정부가 이번 회담의 성과의 하나로 꼽는 ‘두 나라는 한반도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중국 쪽은 이후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다양한 갈등 요인을 안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동시에 정부가 평양보다 서울에서 먼저 열린 중국과의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계기를 정세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이 기자들의 질문을 전혀 받지 않는 이상한 회견이 된 것은 불편한 얘기가 나오는 것조차 피하려는 정부 태도를 상징한다. 이래서는 소극적이고 현상유지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반도는 4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한다. 그래서 모두 우리나라와 가깝게 지내기를 바란다. 문제는 이런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정부의 전략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북한 핵 문제를 풀고 동아시아 평화·협력·번영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과제는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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