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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중1에게 대2 정수론, 못 말리는 선행학습

등록 2014-07-07 18:26

사교육이 심한 지역의 대형 학원 10곳을 조사해보니 수학과 과학의 최대 선행교육 정도가 2012년 평균 3.8년, 2013년 평균 3.8년에서 올해는 4.0년으로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조사한 결과다.

어느 학원은 중학교 1학년에게 정수론을 가르친다고 홍보를 하는데, 7년 이상 앞서는 진도다. 정수론은 각종 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로 암호학 등이 이를 토대로 발전했다. 대학교의 수학과 학생들도 어려워해 2, 3학년 때나 배우는 과목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알아듣기나 하는지 의심스럽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배우는 학생들의 지적 탐구욕이 일찌감치 메말라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최대한 증폭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상술일 텐데, 아이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이런 현상은 2월 선행학습 금지법이 통과돼 9월 시행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 실망스럽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학원으로 하여금 선행교육 상품을 선전·광고하지 못하도록 말로만 규제할 뿐 아무런 처벌조항을 두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할 수 없는 틈을 타 학원들이 선행학습 홍보를 더 강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학원의 선전·광고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이 개정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학원도 선행학습을 할 수 없도록 원천금지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주기 바란다.

선행학습과 관련한 교육감들의 각종 구상도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대형마트를 한 달에 두 번 쉬게 하자 주변 상권이 살아났듯이,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는 학원에 월 2회 주말 휴무제를 도입해 학생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되더라도 학벌사회의 폐해 등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 없이 과연 규제만으로 선행학습을 막을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 법은 당장 선행교육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지혈’하는 응급처치에 가깝다. 근본적인 구조부터 해결하자고 하기에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너무 크다. 법 시행으로 당장 큰 효과가 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더 정교한 전략과 방법론으로 근본적인 입시제도 개혁을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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