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의 비중이 늘어나는 데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책임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겨레>가 최근 고용형태를 공시한 10대 재벌 계열사 211곳의 고용현황을 분석했더니 평균 간접고용 비율이 30.6%로, 전체 공시대상 2492곳의 평균(20.1%)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재벌 대기업이 경쟁력과 수익성의 논리에 치우쳐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간접고용은 사내 하도급과 파견, 용역 등을 활용한 인력운용 방식이다. 간접고용을 늘리면 인건비의 경직성을 해소할 수 있고 경영여건에 따라 인력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신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전체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린다. 때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허문다.
정부와 재계는 지금까지 이런 간접고용의 확대를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업종과 경영여건이 갑자기 나빠진 기업들의 문제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10대 재벌이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인건비 지급 여력도 양호한 곳이다.
대기업들은 직접, 간접 고용을 가릴 것 없이 전체 비정규직의 확대까지 주도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 결과를 보면, 종업원 1만명 이상 기업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은 40.5%로, 300명 이상 500명 미만 기업의 평균 26.8%보다 높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직접고용보다는 간접고용,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실태가 드러난 셈이다.
물론 고용 규모와 방식, 형태 등은 개별기업으로서는 경영권에 따른 자율적 선택 사항이다. 업종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접고용이나 비정규직 비중이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매출액과 이익 규모가 클수록 공통으로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는 현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고용시장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이가 커지는 것은 재벌 대기업의 중장기 경영여건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국내 노동력의 건강한 재생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민간소비 기반의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통한 선진화는 대기업의 성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 기업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인적자원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차원에서도 대기업들은 ‘질 나쁜’ 일자리에 대한 유혹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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