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증 목사의 이사장 임명에 반대하며 시작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직원들의 농성이 다섯 달을 넘겼다. 사태 해결의 전망은 여전히 흐릿하다. 박 목사와 직원들은 업무에 복귀하라는 내용증명과 정상출근 중이라는 반박문을 교환하는 등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사회는 17일 직원 징계를 쉽게 하는 내용의 인사규정 개정까지 의결했다. 자칫 해고 등 대량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사업회 운영은 멈췄다. 정기간행물 출판이 중단됐고, 민주주의 현장체험이나 교사연수 등 각종 사업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은 다섯 달 넘게 밀렸다. 주무부서인 안전행정부가 이사회 의결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회 운영을 파행으로 몰아넣어, 민주화운동 정신의 계승·발전과 민주주의의 성장이라는 사업회의 취지까지 고사시키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사업회가 2월에 임원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새 이사장 후보를 추천했음에도, 안전행정부는 추천 명단에 없던 박 목사 임명을 강행했다. 박 목사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유신시대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실 왜곡과 굴절된 인식을 드러낸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사업회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고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흐트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사장에 이어 5월 이사진과 감사 임명까지 밀어붙였다. 대부분 민주화운동에 굴절된 인식을 드러낸 뉴라이트 인사이거나 박 목사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정부는 인사권이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있어 문제가 없다는 태도지만, 낙하산과 일방통행식 인사라는 본질을 가리기엔 궁색한 변명이다. 정부의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야당과 시민·재야단체가 불참해 별도의 기념식을 연 것은 이런 행태가 민주화운동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와 항의라고 봐야 한다.
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를 일군 소중한 자산이다. 그 정신의 계승과 발전은 중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일을 맡은 기념사업회가 침몰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동안의 낙하산과 일방통행식 인사부터 거둬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사장 선임부터 다시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 박 목사도 노여움과 집착 대신 스스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인식전환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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