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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쌀 전면개방, 충분한 공론화도 없이 선언하다니

등록 2014-07-18 18:19

정부가 18일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쌀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관세만 물면 외국산 쌀이 얼마든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쌀이 여전히 국민들의 주식이고 농가소득원의 큰 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다. 쌀 생산 기반이 무너질 수 있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자칫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몇몇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관세화 방침에 맞서 밤샘농성과 삭발투쟁을 벌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정과 농민단체가 참여하는 ‘여야정단 4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관세화 문제를 두고 농민단체, 정당과 제대로 된 논의나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 아닌가. 실제로 정부가 지난달 관련 공청회를 열었으나 요식행위로 그치고 말았다. 이런 중대 사안을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관세화가 현재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의무수입물량 제도를 고수하려고 하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40만9000t으로 늘어나 국내 쌀 소비량의 9%를 차지하는 수입 한도를 대폭 확대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무수입제도를 연장한 필리핀의 경우 한도를 2.3배로 늘려줬는데,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훨씬 커서 양보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관세화를 하되 고율의 세금을 매기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과 대만의 사례를 덧붙이기도 한다.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무수입제도를 포기하더라도 높은 관세율을 계속 부과하면 외국산 쌀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단체 등은 정부가 이런 고관세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낸다. 지금은 정부가 불만을 달래기 위해 300~500%의 관세를 물리고 수입이 급증하면 특별긴급관세(SSG)를 매기겠다고 말하지만 이를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을 다른 나라와 새로 추진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관세율을 많이 낮추거나, 쌀을 양허(개방) 대상에 넣지 않을까 걱정한다.

정부 농업정책이 그동안 농민단체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한 데 따른 업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9월까지 내놓겠다는 ‘쌀산업 발전 대책’마저 어설픈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관세화 선언을 했다고 해서 쌀시장 개방 문제가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농민단체들의 얘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책에 반영할 것은 적극 반영해 믿음을 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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